새로이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설 대지엔 오래된 두 그루의 나무와 한 채의 적산 가옥 그리고 쓰러져가는 두 채의 슬레이트집이 있었다. 이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을 환기하고 또 다른 시간을 이 장소에 이식( 移植 )하고 싶었다. ‘초량’이란 장소는 우리 주거의 시간의 단면을 가로지르듯 다양한 유형의 주거, 이를테면 적산가옥, 슬레이트 집, 다가구, 아파트 등 각자 서로 다른 스케일과 보기 드문 밀도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산지의 비탈면을 채워왔다. 자연 현상에서 주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을 통해 주변과 동화되는 camouflage의 현상처럼 우리에겐 거대 자본에 의한 대규모의 획일적인 개발 방식이라는 천적으로부터 기존 장소의 고유한 특질들과 소소한 관계를 유지할 작은 스케일의 출발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특히 초량과 같은 구도심에 있어 신축에 대한 태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장소와의 관계에 있어 드러나지 않고 주변의 풍경에 어떻게 스며들지 그리고 개체간의 밀도, 다양한 폭의 골목길에서 느끼는 정감어린 스케일, 그리고 비탈진 경사면을 오르기 위해 설치된 높은 계단과 같은 이 장소에서만 느낄 익숙한 경험들의 재현이 아닐까 싶다. 다섯 그루의 나무는 다섯 채의 집을 은유한다. 대지 40평 위에 채 나눔을 통해 다섯 채의 작은 집들이 만들어 내는 거리는 마치 자연에서 늘 마주하는 수목과 수목사이의 임의적 거리감과 닮아 있다. 그 사이로 초량의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이 스미고 잠시 머물고 갈 여행자들에겐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볕을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