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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문화] [전시]인간산수_장윤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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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24-04-17

장윤규개인전

<인간산수>


토포하우스

(종로구 인사동 11길 6)

02-734-7555

전시기간 5월1일 - 5월26일

오프닝 5월1일 3시 (리셉션 5시)


초대의 글


<인간산수>란 주제로 조그마한 전시회를 준비하였습니다. 건축적 작업과 동시에 틈틈이 그린 10여 년간의 기록입니다. 건축과 예술의 근본은 인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 전쟁과 빈곤, 환경오염 등 세계에 만연한 갈등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것도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해답이 있을 것입니다. 천산 천인의 끝없는 산수 구도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전시는 <인간산수>와 <건축산수>로 구성되며 인간적 구축과 건축적 회화를 넘나들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작은 그림을 통해 서로의 정신세계와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장윤규(운생동건축사사무소,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인간산수>는 장윤규가 스스럼없이 건축가라는 이름을 벗어 던지고 회화 작업을 내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작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체험하고 습득한 인간의 실존과 자연에 대해, 내밀한 사유를 통해 섬세하게 구성하고 조합하여 회화로 재현한다. 관찰자 혹은 전지적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며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장윤규 스스로가 참여자이자 동시에 작업의 대상으로서, 흡사 자화상을 그리는 작의를 담은 듯 작업의 일부로 들어가 있는 태도를 취한다. 몸을 바짝 기울여 면밀히 들여다보면 어디인가 쪼그려 숨어있는 그를 찾아낼 수 있다. 

장윤규 작업은 마치 자신을 닮은 듯한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그 이미지를 무수히 반복하고 확장하는 일련의 시리즈다. 장윤규는 대담하게 인간의 형을 추상화하고 간소화한다. 옷도 걸치지 않은 이 군상들은, 그리하여 그의 화면 안에서 나란하고 동등하게 후퇴되어 있다. 나아가려 버둥대나 그조차 무상하다. 그의 인간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장윤규의 시선은 동정에 가깝다. 욕망하고 좌절하는 인간과 인간성에 대해 연민, 혹은 자조하고 있지만 결코 애상이나 슬픔에 그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만의 애정과 위트를 듬뿍 담고 있다. 붓으로 그려냈으나 카툰 캐릭터 같기도 하고 유쾌하고 팝하다. 발 디딜 곳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인간들에게서 어딘가 움직이려는 동세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푸코가 인생은 최종적으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 것 같이 장윤규의 인간군상이 어떤 결론으로 향해갈지는 알 수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다만 인간들은 보듬고, 곁눈질하고, 배척하고, 껴안고, 들고, 누르고, 우러러보고, 만지고, 손 내밀고, 업힌다. 체계와 방향을 띠지 않고 부유하는 인산인해에서 장윤규는 특정한 서사를 내세우지 않는다.

<상자 인간> 시리즈에서 인간의 슬픔은 사각형의 상자를, 혹은 돌덩이를, 혹은 쇳덩어리를 저마다 들면서 드러난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과연 소중한 것이기는 한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삶이라는 굴레의 허망함을 꼬집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은 일견 삶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의지와 생각조차 없는 듯하나 절망적이거나 저항적이기 보다는 관조적이고 자연스럽다. 판화나 인쇄, 실크프린팅 같은 기계의 작법은 모두 거부하고 손으로 붓을 잡고 빈 종이에 하나하나 그려내는 사람들의 외양은 모두 다 다르다. 제각기 무수한 속성을 지닌 무한한 존재인 것이다. 장윤규는 오랫동안 바로크를 지지하고 탐독했는데, 작업의 인간들은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basso continuo)와 같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저음과도 같다. 세련된 형식을 갖추는 서사는 아니지만 작업이 들뜨지 않게 무게를 담당한다. 차이와 반복의 변칙적 저음들이다. <도형> 시리즈는 사각과 삼각, 마름모, 원형 등의 틀 안에 웅크린 사람들을 넣는다. 장윤규의 인간 시리즈 드로잉은 속도가 꽤 빠른 프리핸드이나 <도형> 작업들에서는 인간들이 편안하고 유동적이라기 보다는 틀에 가두어져 있다. 지난하고 괴로운, 탈주하고 싶은 삶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어쩐지 모르게 보는 이에게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장윤규는 도형의 사이즈와 캔버스에서 도형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 도형 내부에서 사람들의 조합을 조정하고 변경하며 시도한다. 수백장에 달하는 <사중주> 시리즈의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낯설고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장윤규는2차원의 회화라는 명제를 순순히 받아들여 화면을 선으로 구성하지만, 깊이와 입체감을 잃지 않는다. 얇은 종이를 접어 세우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의 작업은 생성되고 겹치는 주름으로 가득 차 있다.  장윤규의 <원> 시리즈에서 그의 선은 방향과 뚜렷한 객체가 없이 애매하지만 들뢰즈가 읽어낸 라이프니츠의 주름과 같이 접힌 채 설명을 함축하고 있는 잠재태다. 

우주는 인간과 병립하며 인간이 우주에 귀속된다. 장윤규의 작업에서 산수가 담는 우주의 세계는 신체, 틀, 물질의 세계와 뚜렷이 구별된다. 이러한 우주에 대한 인식은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을 통해 형성된 바로크의 신과 우주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산>, <수> 시리즈는 주로 수묵을 사용하면서 청색, 적색 등의 채색을 곁들인 추상적이고 힘있는 화면이다. 굵고 두터우며 힘있는 수묵의 필선으로 그려낸 산자락과 물길에는 공명하는 에너지와 강렬한 울림이 있다. 그 안에 부드럽고 가는 붓으로 먹색의 인간을 무수하게 반복해 그리며 꿈틀대는 삶의 편린을 나긋이 읊는다. 먹은 물기가 대번에 스며들기에 고치기가 어렵고 되돌릴 수가 없다. 실수와 연습이 허락되지 않는 매체인 먹을 고집해 수만명의 사람을 원(circle)으로 응집시켰다. 오랜 긴장을 유지하면서 반복하는 지난한 작업이었을 테다. 장윤규의 작업에서 반복은 중요한 특징이다. 반복되는 몸은 조금 더 구부러지게,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휘어지게 나타난다. 들뢰즈는 반복이 창조적 무질서라고 했다. 반복은 재현과 달라서, 비뚤고 차이나는 불균질을 긍정한다. 

건축인인 장윤규가, 작업에서 삼차원의 공간감과 깊이를 더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은 것은 일견 의외다. 장윤규의 회화는 분명히 선의 작업이다. 원형적 기하로 산수를 그려냄에 있어 구체적 형태를 띠면서도 군더더기를 생략한 채 명확하고 간결하다. 장고하고 나서야 비로소 붓을 들고, 까다로운 기준에 의해 선별한 요소들만 그리는 장윤규의 작업방식 때문이다. 시각적인 이해가 쉽다. 설명과 관념은 줄이고 핵심은 전달한다. 그의 주제인 ‘인간산수’에 대한 겸허한 자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회화와 예술에 대한 장윤규 개인적 태도의 소산이기도 하다. 강박적일 만큼 첨단 테크놀로지를 도입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건축가가, 지난 수 년간 벌거벗은 인간 모티브를 붓을 들고 흑백으로 그려왔다. 장윤규의 회화가 지닌 담백함과 순수, 직관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작업 과정과 결과 모두에 우연과 즉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직하게 계획하고 구상한 후에, 찍어내거나 흩뿌리거나 밀어내거나 하지 않고, 엄지와 검지, 중지로 붓을 감아 쥐어 붙들고, 화폭에 몸을 바짝 엎드린다. 기어이 그려야만 하는 작가의 구도와도 같은 작업에서, 또한 자신의 생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생동한다. 


문화 비평가 김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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